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림피아 제전 (문단 편집) == 경기 행위 == 사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이명답지 않게 [[고대 그리스]] 시대는 물론, [[로마 제국]] 시대의 올림픽 또한 꽤나 막장이었다. '''선수는 물론 심지어 고위 귀족들마저도 뇌물과 반칙을 서슴지 않았고, 경기 자체가 장사와 선전판, 그리고 [[토토충]]들의 도박판이 되었다.''' 고대 올림픽의 행위는 [[제우스]] 신에게 바쳐지는 것이었고, 목숨을 담보로 한 운명과의 싸움의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를 아곤(Agon)이라고 불렀다. 승자는 자신의 공동체에 승리와 영광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때문에 '''패자는 죽음 혹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를 겪어야만 했다. [[레슬링]]이나 [[권투]] 같은 종목에서, 패자는 거의 대부분 죽었다고 봐도 된다. 물론 경기 중간에 손가락을 올려 항복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전 사회적으로 등신 취급을 당했기에 죽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자신이 없는 경기는 기권했다. 그런데 출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경기에 그냥 불참해버려도 문제였다. 어떤 선수는 복싱 경기에서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팡크라티온]] 경기에 불참해버렸는데 상대 선수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이유로 [[벌금형]]과 [[채찍]]형에 처해졌다. 이 당시의 경기는 지금 보면 참으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격투 경기인 팡크라티온에서 금지하는 것은 눈을 후비는 것과 입으로 깨무는 것, 손톱으로 할퀴는 것, 이 세 개가 전부였고, 이마저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경기는 옷 쪼가리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이고 누군가 죽거나 항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권투의 경우, 올림픽 초기에는 히멘테스라는 가죽 줄을 주먹에 두른 채로 싸웠지만 로마 제국 시대로 접어들자 날이 선 쇠를 가죽 줄에 감은, 그 악명 높은 [[세스타스|카에스투스]]를 두르고 싸우게 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눈두덩이가 부어 올라 있다거나 턱에 홈이 패여 있다거나 귀가 찌그러진 것은 복싱 선수의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 승리한 자는 전 공동체의 영광'''이 되었고 다른 '''큰 [[폴리스]][* 예를 들면 [[아테네]] 같은 곳이다.]에 스카우트'''가 될 정도로 엄청난 출세를 할 수 있었기에 경쟁은 치열했다. 당시의 경기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경기를 하다가 조금 복잡해져서 서로 한 번씩 타격을 가하기로 판정이 났다. 그래서 한 선수가 상대편 선수의 얼굴을 세게 쳤는데, 상대편 선수는 이 선수의 배를 손가락으로 찔러 내장을 끊고 뜯어버렸다. 하지만 심판은 "다섯 손가락을 다 썼으니 5번의 타격을 가한 것"이라고 판정하고 내장이 뜯긴 선수를 승자로 판정했다. 어차피 바로 죽었지만. 또다른 예도 있다. 한 선수가 상대방에게 목 조르기를 당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혼신의 힘을 짜내 상대방의 다리를 [[관절기]]로 부러뜨렸다고 한다. 그걸 당한 상대방은 고통으로 항복했지만 승자는 [[질식사]] 했다고 한다. 멀리 뛰기 종목이 있었는데 이건 양손에 5kg 정도의 쇳덩이(할테레스)를 들고 추진력을 더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때의 기록이 현재의 세계 기록보다도 약 50cm 정도 더 멀다고 한다. '스타디온'이라는 180m~240m[* 정확한 수치는 불명이다.]의 거리를 뛰는 경기가 뒷날 '[[경기장|스타디움]]'의 유래가 된다. 24스타디온을 뛰는 경기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스타디온'을 비롯한 달리기가 가장 인기가 많은 메인 이벤트였다. 보통 '스타디온'의 우승자가 가장 큰 찬사와 영광을 얻고, 그해의 올림픽을 칭할 때 그의 이름이 수식어로 붙는다. 예를 들어 '김아무개'가 우승자라면, 그 올림픽 경기는 '김아무개가 우승했던 올림픽'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기에는 [[메달]] 같은 것이 없었으며, 승자에겐 [[월계관]]과, 본인이 승리한 경기가 그려진 테라코타 항아리에 [[올리브유]]를 가득 담아 주었다. 전술하였듯, 선수로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젊은 [[그리스인]] 남성뿐이었고 [[외국인]]과 [[노예]]는 참가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이 그리스인 혈통이라는 것을 심판들에게 인정받은 후에야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여성]]의 참석은 금지'''되었고, 참석 시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기혼 여성]]은 참가도 관전도 금지였으나, [[처녀]]의 경우는 결혼 전에 이렇게라도 [[남성]]들의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관전은 가능했다. 그리고 남성 경기가 없는 날에는 [[헤라]] 여신을 위한 [[스파르타]] 여성들의 특별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대신 여성 경기는 옷을 입고 진행되었다. 그러다 한 선수의 어머니인 칼리파테이아(Kallipateira)라는 여성이 헐렁한 옷으로 [[코치(스포츠)|코치]]인 양 참석했다 잡힌 이후로[* 다행히 그날 아들이 복싱 대회에서 우승한데다 그녀의 아버지, 형제, 남동생이 전부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 명가 집안이라서 살아남았다. 게임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에 이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 여성은 아들의 경기를 보고 싶어 남장을 하고 관전하다 잡혔고 선수 중 한 명에게 음욕을 품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스티오스|주인공]]이 이 사건에 관해 조사하여 그 여성이 무죄 판결을 받게 도와줄 수 있다.] 관중도 알몸으로 보게 하였다. 이에 대해 다른 학설이 있는데, 권투 경기에 참전한 스파르타 여성이 남자 선수들을 충공깽한 실력으로 발라버려서 이후에 선수도 관중도 알몸으로 경기를 참가하고 관전하게 했다고 한다. 여성이 유일하게 참가할 수 있었던 경기는 전차 경주로, 전차의 주인이면 참가할 수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올 수는 없었고 전차는 마부가 몰았지만, 그래도 승리하면 월계관은 받았다.[* 최초의 사례는 기원전 390년대 스파르타의 공주 키니스카. 키니스카는 에우리폰티다이 왕가의 아르키다모스 2세([[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늙은 왕)의 딸이었으며, 일찍부터 말을 훈련시키는 데 관심이 많았고 후일 전차 경주에 직접 훈련시킨 말들과 스카우트한 남자 마부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전시켜서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이런 여성 경기 규제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느슨해져서 기원전 4세기경부터 헤라 여신을 위한 여성들만의 제전 경기가 열렸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고대 올림픽이 평화의 제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까지 [[도시국가]]로 뿔뿔이 흩어져 전쟁을 밥 먹듯이 하고 살았던 그리스가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종교 이념, 즉, '''공통의 가치'''를 가지고 한 장소에 모여 일시적인 화합을 도모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고대 올림픽의 가치에 주목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특히 제전 시작 3개월 전부터 올림피아로 몰려드는 여행객과 주민의 보호를 위해 그리스 전역에 [[휴전]]령을 선포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제전 경기 전은 에케케이리아(ekekheiria)라고 해서 신의 보호를 받는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전쟁 금지, 타인의 재물에 손대는 것까지 엄격히 금지했다. 물론 휴전령을 무시하고 전쟁을 벌였다가 올림피아 제전에서 임시 제명되었던 애들이 있었는데, '''바로 성깔이 험악한 [[스파르타]]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 때문에 근대 올림픽은 태생적으로 평화 지향적이며, 기계적 중립을 중시하는 편이다. 다만 고대 올림피아 제전의 의의는 어디까지나 올림피아 성소에서 봉헌하는 제사였다는 데 있고, 휴전은 종교적 동기를 가진 '성스러운 휴전(ekekheiria)'이었다. 즉 운동 경기가 휴전을 부른 게 아니라 제사가 휴전을 부른 것이기에 태생적으로 근대 올림픽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